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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조 듀얼가드 ‘조성훈’ … 끝나지 않은 ‘마지막 승부’

기사승인 2022.07.04  09: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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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뷰] 국내 최초 독립농구단 총감독으로 김포에 입성한 ‘이에스쿱 드림즈’ 조성훈 감독

90년대 초부터 우리나라에 불기 시작한 농구 열풍은 90년대 중반 대학팀의 대거 등장에 그 열기를 더했다. 특히, 연세대·고려대·중앙대 등 대학팀 강호와 실업팀 강호 삼성전자를 연파하던 명지대는 농구계의 새로운 돌풍을 예고했다.

명지대의 이러한 돌풍 중심에는 에이스 조성훈 선수가 있었다. 그는 3점슛, 런닝점프슛, 돌파 등 전천후 득점력을 자랑했던 듀얼가드로 명지대를 대학 세력 중심 자리로 이끈 핵심적 인물이다.

그런 그가 올해 3월, 국내 최초인 독립농구단 ‘이에스쿱 드림즈’를 이끌고자 김포에 입성했다. 이에 씨티21뉴스는 전설의 듀얼가드던 조성훈 감독을 만나 독립농구단의 총감독을 맡게 된 배경과 그에 따르는 소회를 들었다.

   
▲ 국내 최초 독립농구단 '이에스쿱드림즈' 조성훈 총감독.

┃90년대 중반을 농구계를 뒤흔든 듀얼가드 조성훈

득점력이 엄청났던 원조 듀얼가드. KBL 데뷔 시즌부터 총 8시즌 동안 한 팀에서만 뛴, 레젼드 대우 안 해주기로 유명한 KBL에서 정말 보기 드문 프랜차이즈 스타…. 조성훈 감독 앞에 붙는 수식어다.

앞서도 나열했지만, 90년대 중반은 우리나라 농구계의 춘추전국시대였다. 농구대잔치를 보기 위해 수백 미터의 대기 줄을 감수했으며, 중계하는 TV 채널을 사수하기 위해 각 가정이 시끌시끌하기도 했다.

어디 이뿐인가. 각 팀 선수들이 이동하는 차량에는 팬들이 장식한 문구로 도배되기도 했다. 이 여세를 몰아 MBC에서는 장동건·손지창·이상아·심은하 등 하이틴 스타가 대거 출연한 ’마지막 승부‘를 제작해 당시 농구 열풍을 대변했다.

이 시기 명지대 소속이던 조성훈은 고교 시절보다 더 좋은 컨디션을 보인다. 이어 조성원·김현주·박상관·김태진·표명일·박재일·이현호·이병석·정재현 등과 대학 세력의 중심으로 끌어올리는 역할을 하는데, 당시 대학팀 강호던 연세대와 고려대, 그리고 중앙대 등은 물론 실업팀 강호 삼성전자에 승리를 거두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 기본기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조성훈 감독이 선수들에 직접 시범을 보이고 있다.

┃33세 은퇴, 은퇴 이후 방황 그리고 재도약

그러나 농구선수 조성훈은 프로 초반 당한 무릎부상이 끝내 발목을 잡더니 끝내 한창 잘나가야 할 나이에 은퇴하게 된다. 그때 그의 나이는 겨우 33세.

“은퇴 후 공사현장에서의 8개월간 생활이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되었습니다. 깜깜한 밤에 공사장 안에서 밤새우고, 땡볕 밑에서 잠을 자보기도 하고, 물집 잡힌 거친 손으로 노동자들과 잔을 기울이며 인생을 다시 알아가던 시기였죠”

은퇴 후 방황하던 그를 한순간에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이후 그의 이름을 건 농구교실에 선수를 육성하는 지도자의 길을 걸으며, 2021년까지 전자랜드 유소년 농구교실 총감독으로 활약했다.

그리고 2022년 3월, 국내 최초 독립농구단인 ’이에쿱드림즈‘를 고교 후배인 이득효 ’이에스(ES)스포츠나눔‘ 이사장과 꾸리게 된다, 우리 정서에는 다소 생소한 독립농구단을 창단하게 된 이유에 대해 조성훈 감독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프로에 진출하지 못해 갈 길을 앓은 젊은 선수들에 ’끝나지 않은 도전‘, 즉 ’희망의 첫걸음‘이 되어주고자 합니다”

   
▲ 경기전, 선수들에 힘을 실어주고 있는 조성훈 감독.

┃지금의 최종 목표는 ’경기도민체전‘과 ’전국체전‘

운동선수들에는 여러 가지 넘어야 할 벽이 있다. 그들의 최종 목표는 프로와 실업리그에 입문인데, 말처럼 쉽지 않다. 학창시절 내내 농구만 했는데 프로나 실업 신인선발에 발탁되지 않으면 인생의 모든 절망과 좌절이 그 선수의 것이 된다.

조 감독은 이 부분에서 운동을 그만두는 선수가 속출한다며, 버티고 버티다가 치고 올라오는 후배들 눈치에 스스로 포기하는 선수도 상당하다는 현장의 목소리를 전했다. 이에 독립농구단을 창단하게 되었다고 덧붙인다.

“현재 선수들은 체력이 많이 안 좋은 상태입니다. 어떻게든 끌어올리려 하는데, 인원은 적고 선수들은 체력적으로 힘든 모양입니다. 지금은 무리하며 유(有)를 만드는데, 무엇보다 운동을 쉽게 생각하는 그들의 자세를 바꾸는 데 초점을 두고 있습니다”

평소 원하는 것을 바로 해결해야 하는 성격인 그는 선수들 훈련에도 성격이 그대로 나온다. 시간을 넘기더라도 자신이 계획한 훈련량을 반드시 채워야 하는 통에 훈련생들에는 다소 엄한 지도자로 평가된다.

그러나 조성훈 감독은 자신의 열정이 훈련생들이 고스란히 받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지난 3월 창단 후 치렀던 4차례 연습경기에서 가능성을 보았다며, 현재 최종 목표인 경기도민체전이나 전국체전 등 출전을 위해 스파르타식(?) 훈련을 이어갈 것이라는 자신감을 보였다.

   
▲ '이에스쿱드림즈' 선수들을 지도하고 있는 조성훈 감독

┃지역사회의 많은 관심과 지속적인 후원 … ’김포‘ 이름으로 ’김포‘에 보답할 것

또래보다 큰 키에 어린 조성훈은 동네 형들과 온 동네를 누비며 지냈다. 그 시절 우리나라 어느 곳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평범한 모습이다. 그러나 그를 듀얼가드로 성장시킨 데에는 ’미끼(?)‘와 그에 따른 ’관심‘이 뒷받침됐다.

그땐 왜 그리도 배가 자주 고팠는지. 도시락 먹고 돌아서면 뱃속에서 꼬르륵거리는 통에 민망할 때가 한두번이 아니었다. 그러던 차에 학교(당시 경주 계림초) 농구부 선생님이 우유와 빵을 실컷 먹게 해 주겠다며 초등학교 3학년 조성훈에게 미끼(?)를 던진다.

이러한 좋은 기회를 거절할 이유 1도없다 생각한 조성훈은 다음날부터 농구부에 출석 도장을 찍는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날이 갈수록 빵과 우유보다는 골대에 공을 넣는 게 좋아지더란다. 어떤 날은 밥 먹는 것도 잊고 농구를 했다는 조성훈 감독에 어린 성훈이가 뛰고 있다.

당시 계림초 농구부 담당 교사와 주변 사람들은 성훈이의 이러한 모습에 관심을 기울이게 되는데, 그 관심은 90년 중반 당대 최고의 농구 스타를 배출하는 데 큰 역할을 했음은 인정. 또 인정이다.

조성훈 감독은 농구의 ’농‘자도 모른 어린 성훈이가 농구인으로 강건하게 성장할 수 있었던 건 관심 덕분이라며, ’이에스쿱드림즈‘ 또한 김포 지역사회와 시민의 관심과 사랑으로 곧 우리나라 독립농구단을 이끌 주역이 될 것이라 확신했다. 그러면서 다음과 같은 부탁을 덧붙였다.

“지금은 제 이름으로 후원받고 있지만, 앞으로는 ’이에스쿱드림즈‘의 이름으로 후원이 들어올 수 있도록 체육회를 비롯한 지역의 많은 관심이 필요합니다. 지역의 관심과 지원이 밑거름된다면, 분명 ’김포‘ 이름으로 좋은 선수가 배출돼 좋은 성적으로 ’김포‘에 보답할 것입니다”

초등학교 3학년 10살 성훈이가 빵과 우유의 미끼로 농구에 입문하였다면, 김포에서 전국 최초로 생긴 독립농구단에 조성훈 감독이라는 미끼와 김포지역사회의 관심이 필요한 시점이 아닐까 싶다.

   
▲ 감정동 체육관을 찾은 김병수 김포시장과 함께. 왼쪽부터 이득효 이에스(ES)스포츠 나눔 이사장, 김병수 시장,  조성훈 이에스쿱드림즈 총감독.

마지막으로 조성훈 감독에게 ’농구‘는 자신에게 무엇이냐는 질문에 1의 망설임도 없이 ’심장‘이라 답한다. 농구가 없었다면 자신이 어떻게 살았을지 모른다면서 말이다. 한때 전성기를 누리던 레젼드도 그러한데, 여러 이유로 포기했다 재기하려는 독립농구단 선수들에는 얼마나 간절한 이야긴가.

조성훈 감독은 인생에서의 마지막 승부를 걸 독립농구단 ’이에스쿱드림즈‘를 위해 오늘도 ’조‧성‧훈‘ 이름 석 자를 걸고 선수들보다 더 많은 땀방울을 흘리고 있다.

   
▲ 선수시절 조성훈 감독.

 

 

 

양미희 기자 suho@city21.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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